바르베리 비셰트는 어느새 55세가 된 스스로가 새삼 낯설다. 이름을 줄인 애칭이 하필 ‘바비’라는 점은 평생 불만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은엄마이자 신뢰할 수 있는 동료, 멋진 연인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아무리 예상했다 해도 불가항력으로 맞이하게 되는 50대 중반의 시간대, 바르베리의 내면과 일상은 서서히 붕괴된다. 카피라이터로서 쓰는 광고 문구에 대한 주위의 반응은 신통치 않고, 시집을 냈어도 시인으로 기억해주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독립한 아들, 딸과는 서로 애정과 무시, 존중과 경멸 사이를 오가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점점 좁아지고 느슨해지는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잊혀가고 불필요해지는 존재 같은 나의 자리가 어디인지 모호하고 혼란스럽다.